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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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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18

신의 편작과 전통 임상유파

안상우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지난달 30일 2019년 한 해 동안 의사학 분야에서 일궈진 크고 작은 학술성과를 집약하여 한자리에 갈무리하는 정기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는 제30회를 맞이하는 뜻깊은 자리인데다가 중국과 일본의 중진, 신진 학자들까지 가세하여 다양한 주제발표와 열띤 토론이 이어졌기에 예년에 없이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 베이징 수도의과대학 중의약학원 장징치우(張凈秋) 교수가 발표한 ‘선진양한 시기 편작문헌에 관한 고찰’(先秦兩漢扁鵲文獻考辨)은 근래 이루어진 유적 발굴 성과와 기존에 혼란을 자아냈던 위서(僞書) 문헌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줄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 점에서 많은 청중들로부터 관심을 이끌어내었다. 대략 그 요지만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2012.7월부터 2013.8월까지 중국 사천성 성도시(成都市)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서한시대 목곽묘에서 칠기와 목기, 도기, 동철기 등 다량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출토품 가운데 몇 가지는 의학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그중 첫째는 경혈 위치가 표시된 침구목인이고 또 하나는 편작이 인용된 목간(木簡) 즉 의간(醫簡)이었다.


편작의 실존 여부에 대한 실증자료로 부각


그날 마침 한국측 발표자 가운데 조선왕실 내의원에서 주조하여 사용했던 침금동인을 연구해 유명해진 박영환 원장이 근래 새로 입수하여 실측한 제주 진태준 원장 舊藏 침구동인에 대한 조사 발표도 있었던 터라 침구목인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발표 주제가 편작이란 전설적인 명의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와 역사상 실존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여기서는 편작의 이름이 새겨진 목간과 그와 더불어 후대 편작의 이름을 가탁된 문헌을 중심으로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한다.

화제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정리해 보자면 서한 즉 전한시기 발굴묘에서 발견된 죽간에는 ‘敝昔’이란 글자와 유사한 글자가 다수 반복되어 기재되어 있었는데, 대개 길지 않은 목간의 문면에는 ‘敝昔曰’이란 인용투의 문장이 반복되어 있었다. 

이를 두고 대다수의 학자들이 위의 敝昔이란 인물을 전설상의 명의인 편작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었고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에 적힌 편작의 시대가 이 시기와 부합되기에 더더욱 편작의 실존 여부에 대한 실증자료로 부각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간 1960년대 이래 중국과 일본의 여러 학자들 사이에 편작과 편작의 이름이 붙은 수많은 문헌에 대한 진위 시비와 논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아울러 편작의 생애와 활동시기 및 학파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이 점쳐져 왔다. 하지만, 여전히 확실한 결론을 거두고 있지 못한 터인지라 이번 발표로 인해 학계에 던져주는 파장이 적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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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씨사당석실에 새겨진 편작 시침도.

 

“폄석(砭石)이 동방으로부터 전해졌다”


또한 『한서』예문지의 방기략(方技略)에서 고대 편작이 저술했다고 기재되어 있는 『편작내경』, 『편작외경』, 『태시황제편작유부방(泰始黃帝扁鵲俞跗方)』 등 3종은 모두 실전되고 이름만 남은 상황이다. 게다가 여러 문헌에서 편작의 이름이 등장하는 사적들을 조합해 보면 물경 전후 200~300년간에 걸쳐져 있어 신의 편작의 위명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기보다는 전설 속에 각색된 명의로 간주되고 있는 형편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편작이란 명의의 대명사로서 대개 맥진이나 침구술을 주특기로 삼아 의료업을 직업으로 여러 지방을 떠돌면서 진료를 해주고 대가를 받았던 특정 의료집단 혹은 임상학파로 해석되던 실정이었다.  

더욱이 고대로부터 청말에 이르기까지 편작의 이름이 가탁된 문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이러한 의구심을 한층 더 증폭시키는데 일조하였음이 분명하다. 특히 여태까지 신의 편작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 산동성 무씨사당석실의 새(神鳥)의 모습을 지닌 침구신인 – 인수조신(人首鳥身)에 침을 들고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음 – 이 편작과 무관하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토론시간에는 산동성을 비롯한 극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사면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흔적이 아닌가하는 가능성이 점쳐졌고 흥미로운 상상 속에 동아시아 의약신화의 주역, 편작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질의응답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불현듯 오래 전 중국 방문길에 무더위를 무릅쓰고 찾아가 보았던 서안 장회태자묘실 지하 회랑의 예빈도가 떠올랐다. 

고분 벽화 그림에서 마주한 사신의 모습 가운데에는 분명히 머리 양쪽에 기다란 새의 깃털을 꽂아 장식한 고구려 전통의 조우관(鳥羽冠, 절풍(折風)이라고 불림)을 쓴 인물이 서있었다. 

여태까지 알려진 제반 사실을 참고해 보면 머리나 몸에 새의 깃털을 꽂아 치장하거나 솟대에 새모양 장식을 달아 표식을 삼고 초원을 주유했을 편작파의 명성과 기원은 동북아시아 초원과 산동 이북 북만주지역을 무대로 활동했을 고동이족으로부터 발원된 것이 아닐까 하는 가능성을 점쳐 본다. 

마침 몇년전에 백두산 인근이 특산지로 알려진 흑요석이 폄석의 주재료이고 이것을 토대로 침폄술로 대변되는 침의 기원이 『내경』이법방의론에서 말한바 “폄석(砭石)이 동방으로부터 전해졌다”는 언급을 실증하고자 하는 연구도 있었던 지라 단순히 침구학의 종주국이 중국이냐 한국인가라는 관념적인 역사인식에서 벗어나 고대의학 역시 지역을 기반으로 특정한 치료기술을 지닌 의가들이 무리를 이루어 다니다가 여러 가지 유파들이 상호교류가 이뤄지면서 다양한 기법들이 습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폄석으로 창종과 어혈을 다스렸던 편작의파


한 꺼풀씩 베일을 벗고 드러나는 고대의학의 수수께끼, 기록된 역사적 사실만 갖고 우리 의약의 역사를 축소하거나 왜소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의학의 발전은 질병과의 끊임없는 사투 끝에 다양한 치료방법을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전개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새가슴 뛰듯 실낱같은 맥동을 짚어내 생사를 가려내고 날카로운 새의 부리 같은 폄석으로 병자의 몸에 생겨난 창종과 어혈을 다스렸을 편작의파, 그들은 분명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맥을 이어온 한의의 먼 조상(遠祖)임에 틀림없다.

이와 유사한 그림으로 고비사막 건너 사마르칸드 지역의 아프라시압 고분벽화에서도 고구려와 백제사신이 그려진 조공도가 발견되어 삼국시대 한반도인들이 생각보다 훨씬 멀리까지 활동무대로 활약했음이 알려진 바 있다. 

그보다 또 훨씬 오래전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에도 극동아시아와 시베리아 일원에서 온몸을 깃털로 장식한 샤먼들이 무의 전통을 이어왔다는 사실은 고대 발굴 유물과 유목민족의 전통이나 풍습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는 바이다.

한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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